사찰 & 여행

[가을 설악산 순례기 2편] 오세암에서 내려오는 길, 단풍은 천상의 색이었다

Sweet Mom 2025. 4. 1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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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새벽,
범종각에서 울려 퍼진 범종소리에 눈이 자연스레 떠졌다.
밤새 몸은 깊은 휴식을 취했고, 마음은 잔잔해졌다.
방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와 함께 맑은 별빛이 아직도 머물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그러나 꽉 찬 고요함으로.

따뜻한 물 한 모금 마시고, 적멸보궁 법당에 올라 삼배를 올린 뒤 다시 배낭을 챙겼다.

오늘은 오세암을 향하는 길.
설악산 깊은 품을 따라 걷는 또 다른 순례의 시작이었다.

 

 

 

 

 

 

 

봉정암을 출발하여 오세암으로 향하는 길은
어제의 고된 오름길과는 내리막길이라 또 다른 분위기였다.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선지 말이다.

그래도 만만하지 않은 일정이지요.ㅎㅎ
안개가 걷히며 점점 밝아지는 숲길,
낙엽이 쌓인 부드러운 길 위로 햇살이 쏟아졌다.

함께 걷는 이들도 조용히 숨을 고르며 발을 맞췄다.
가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면, 단풍잎들이 부드럽게 흩날렸다.
그 광경은 마치 누군가 일부러 연출해놓은 듯했다.

 

몇 시간을 걸어 도착한 오세암.
작고 소박한 암자지만, 그 안에 담긴 전설과 기운은 크고도 깊었다.
문수동자가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며 남아있었다는 그 이야기,
그 기도의 무게와 절실함이 여전히 이곳에 머물고 있는 듯했다.

나는 암자 앞에 조용히 앉아, 눈을 감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기도라는 것이 말보다 더 큰 마음임을 이곳에서 배운다.
잠깐의 휴식, 그러나 평생 기억될 시간이었다

 

오세암을 뒤로하고 다시 백담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그 순간 펼쳐진 광경은, 말 그대로 가을의 절정이었다.

산 전체가 불타는 듯 붉었고, 노란 잎들은 금빛으로 빛났다.
산길은 마치 단풍의 바다 같았고,

우리부부는 그 위를 걷고 또 걸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흩날려 머리 위로 비처럼 떨어졌고,
계곡 옆으로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걷는 이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가을의 선물이었다.

사진으로는 절대 담기지 않을 깊이,
말로는 전해지지 않을 감동.
직접 걷고, 숨 쉬고, 느껴야만 알 수 있는 그 단풍길의 위엄이었다.

 

 

저녁 무렵, 다시 백담사에 도착했다.
하산길의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발걸음이 더뎠지만,
그만큼 마음도 풍성하게 채워졌다.

백담사 법당 앞에서 마지막 삼배를 올리며
이틀간의 순례를 조용히 정리했다.
비워내고, 채우고, 내려놓은 시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품어준 설악산에 고마움을 전했다.

 

셔틀버스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오르니
이제 정말 돌아가는 길이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단풍들을 보며
그저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는 여전히 설악산 그 깊은 곳,
봉정암의 미역국 향과 오세암의 햇살,
그리고 단풍잎 아래를 걷던 나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 여정은 끝났지만,

언젠가 다시 그 길을 걷고 싶다.
같은 길이지만,

다른 마음으로

또 다른 계절에…

.

..

설악산을 다녀 오면서 곁들인 오세암의 전설들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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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 전설 – 다섯 살 문수동자의 기도

옛날, 한 어머니와 다섯 살 된 어린 아들이 설악산 자락에서 유랑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시력을 잃어 앞을 보지 못했기에, 어린 아들이 손을 잡고 길을 이끌며 살았다고 해요.

어느 겨울, 이 모자는 설악산 깊은 산중의 작은 암자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눈이 다시 보이길 간절히 바란 어린 아들은, 암자에 홀로 남아 문수보살께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문수보살님, 제발 저희 어머니 눈을 뜨게 해주세요…"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 다섯 살 꼬마는 혼자 기도하며 며칠 밤낮을 지새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봄이 찾아오던 어느 날, 어머니는 눈을 떴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문은 잠겨 있었고, 아이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었지요.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문수보살의 화신(化身)**이 되어 하늘로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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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동자의 전설에서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눈을 뜨게 한 뒤 홀연히 사라지지요.
이에 대해 일부 승려나 불교 신자들은 그 아이가 단순한 인간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그 아이는 사실 문수보살이 중생의 고통을 시험하고,
그 마음을 살피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잠시 이 땅에 내려온 것이다.”

즉, 효심 어린 아이처럼 보였지만,
그는 원래부터 보살의 화신으로서 인간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간절함이 어느 정도의 힘을 지니는지를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어머니의 눈이 떠지는 기적이 일어난 후,
그 아이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는 해석입니다.

 

이 전설은

단순히 아름다운 효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세암은 지금도 많은 불자들에게 문수보살의 지혜와 인연을 맺는 장소로 여겨지고,
특히 학업, 공부, 지혜, 수행을 기원하는 이들이 참배하기도 합니다.

“진정한 지혜는 사랑과 자비에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이 전설은 수행의 핵심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설악산 오세암의 또 다른 내려오는 이야기 – 관세음보살의 자비로 살아남은 아이

아득한 고려시대,

설악산 깊은 자락엔 설정선사라 불리는 고승이 수행에 전념하는 암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세속의 욕망과 번뇌를 끊고, 조용히 참선과 기도로 마음을 닦는 그에게는
형님이 일찍 세상을 떠난 뒤 남은 다섯 살 난 조카가 있었습니다.

선사는 혈육을 외면하지 못하고 아이를 데려와 암자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지요.
천진한 조카는 추운 겨울에도 매일 삼촌 곁에 앉아 경을 읽는 흉내를 내고,
장작을 옮기며 돕고, 때론 눈 내리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습니다.

어느 해 겨울,

설악산엔 유례없는 폭설과 한파가 들이닥쳤습니다.
암자의 식량이 바닥나자, 설정선사는 조카를 암자에 남겨두고
하산하여 공양미를 구하러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삼촌이 며칠 안에 꼭 돌아오마.
불 앞에서 기도하며, 관세음보살님께 마음을 전하거라.”

아이의 작고 동그란 눈이 걱정스럽게 흔들렸지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삼촌, 나 무서워도 잘 있을게. 보살님이 계시잖아요.”

설정선사는

눈보라를 뚫고 산을 내려갔지만,
폭설과 험한 길로 인해 암자로 돌아오는 데 무려 수 개월이 걸렸습니다.
마음속에선 조카에 대한 걱정이 날로 커졌고, 다시 암자에 오를 땐
살아 있을 거라는 희망조차 내려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봄눈이 녹고 나무에 새순이 돋아날 무렵,
설정선사가 간신히 돌아온 암자 문을 여는 순간—
그 안엔 작은 불 앞에 앉아 조용히 경을 읊조리는 조카가 살아 있었습니다.

초췌하고 앙상했지만, 분명히 살아 있었고,
마치 긴 겨울 동안 누군가 따뜻하게 돌봐준 듯 평온한 얼굴이었지요.

“삼촌! 나 기도 많이 했어. 보살님이 매일 옆에 계셨어.”

이 이야기는 삽시간에 퍼졌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관세음보살의 자비로 살아남은 것이다.
아이의 순수한 믿음과 기도가 하늘에 닿아,
그를 굶주림과 추위로부터 지켜준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 뒤, 설정선사는 그 암자를 ‘오세암(五歲庵)’이라 이름 짓고,
자신이 목격한 기적과 보살의 자비를 후세에 전하도록 했습니다.

오늘날 오세암은 단지 조용한 암자가 아니라,
진심 어린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는다는 믿음의 장소가 되었고,
많은 순례자들이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그곳을 찾는다고 합니다.